2019년 01월호 128p
곡물은 통곡물로 먹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한의학은 어떻게 설명할까?
모든 곡물은 고유의 기미가 있는데, 껍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반대의 성질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중화되지 않은 독을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무서운 경고다. 무슨 뜻일까?
<고혈압 치료, 나는 혈압약을 믿지 않는다>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주인공이자 <청혈주스>로 공전의 히트를 친 저자이기도 한 대한한의원 선재광 박사를 만나봤다.
【강지원】_ 주식인 곡물을 흰쌀이 아닌 현미 등 통곡물로 바꾸고 또 흰밀빵을 통밀빵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대세에 대해 한의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선재광】_ 한의학에서는 모든 곡물은 고유의 차고 따뜻한 성질의 기(氣)와 달고 짠 미(味), 즉 기미(氣味)가 있고, 작은 독(파이토케미컬)들이 거의 들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껍질을 함께 먹는 것이 중화(中和)된 기미를 먹을 수 있고, 독성이 완화되어 건강하게 음식을 먹는 방법이기 때문에 곡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통곡물로 먹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강지원】_ 껍질을 벗긴 흰쌀이나 흰 밀가루는 몸에 좋지 않은가요?
【선재광】_ 네, 껍질을 깐다든가 일부분만 먹는다면 중화되지 않은 독을 섭취할 수 있고, 영양의 불균형 등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습니다. 전체식을 먹어야 한 가지 성질만 튀어 나오지 않고 중화가 되어 유익한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쌀을 비롯해 밀이나 보리 등 곡물을 모두 통으로 먹었습니다.
【강지원】_ 껍질을 함께 먹었을 때와 내부만 먹었을 때 그 성질이 다릅니까?
【선재광】_ 의서를 보면 3,000년 전부터 정확하게 구분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곡물이나 채소, 과일은 껍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성질이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밀가루의 경우 껍질은 성질이 차면서 보호 본능이 있어 딱딱한데, 내부는 뜨겁고 부드러운 성질을 가졌다고 보았습니다.
【강지원】_ 곡물에서 껍질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선재광】_ 껍질은 내부의 에너지를 성장시키고 외부의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므로 단단하고, 쓰고, 맵고, 맛이 없습니다. 하지만 파이토케미컬 등 많은 영양소가 외피와 내피라는 껍질에 담겨 있습니다. 껍질은 외부에 대한 방어도 하고 내부를 키우고 내·외부를 중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강지원】_ 세계 각 민족들이 통곡물을 주식으로 먹어오지 않았습니까?
【선재광】_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을 보면 밀은 5곡 중에서 최고의 음식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5곡 중에서 사시사철을 거쳐 나오는 것이 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밀은 가을에 심어서 겨울에 자라고 봄에 꽃을 피우며 여름에 수확합니다. 사계절을 거치니 한열온량(寒熱溫凉)의 성질이 다 있고 찰기가 가장 풍부합니다. 강한 찰진 성질은 피부를 보호하니 북부 유럽, 몽골, 중국 북부 등 추운 지방의 주식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일본, 중국 남부는 적당한 온도여서 적당한 찰기를 가진 쌀 문화권이 되었고, 동남아 쪽은 더운 지역이라 알랑미라는 찰기가 거의 없는 쌀이 주식이 되었습니다.
【강지원】_ 쌀의 경우 과거에는 도정하지 않아 통곡물 논란이 없었을 것 같은데요?
【선재광】_ 과거에는 쌀 자체가 귀해서 궁중이나 양반층에서나 먹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였고, 술도 못 만들게 했습니다. 쌀은 원래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왕겨는 깎되 쌀겨와 쌀눈이 제대로 살아 있는 현미 등 통곡물 쌀을 먹어야 디톡스가 되고, 피가 맑아지고,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습니다.
【강지원】_ 다른 곡물의 성질은 어떠합니까?
【선재광】_ 찹쌀(나미)은 따뜻하면서 단 성질로, 비장과 위장 기능을 보호하고 허약증을 치료하는 기능을 합니다. 또 찰진 성질 때문에 땀이나 기침, 소변, 대변 등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러나 껍질을 깎으면 반대로 열이 나가 졸리고 늘어지게 합니다. 보리(대맥)는 따뜻하면서 짠맛으로 <본초강목>에서 오곡 중에서 가장 열을 많이 발생시키는 곡물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보리는 머리가 희어지지 않게 하고 풍이 동하지 않게 합니다. 예외적으로 약재로 쓸 때 껍질을 벗겨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밀(소맥)은 찬 성질로 피부를 두껍게 하고 냉기를 몰아낼 수 있게 하고 찰기가 있어서 추위를 막아 줍니다. 메밀(교맥)은 성질이 차기 때문에 비위가 약하거나 찬 사람은 안 먹어야 합니다.
【강지원】_ 곡물을 약재로 사용할 때도 통곡물을 사용하였나요?
【선재광】_ 네, 의서를 보면 곡물을 약재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대부분 통곡물을 쓰도록 하였습니다. 예컨대 여성들이 잘 울고 슬퍼하고 하품하고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장조증(臟燥症)이라는 병에 감초, 소맥, 대추를 재료로 하는 감맥대조탕(甘麥大棗湯)을 씁니다. 이중 소맥, 즉 밀가루는 반드시 통밀을 쓰도록 했습니다. 통밀은 들어가는 순간 심장의 열을 빼주고 순환을 좋게 해 주면서 대사를 일으키고 입이 마른 것을 없애주고 잠도 잘 오게 해줍니다. 반대로 껍질을 벗겨 버리면 내열이 심해지고 잠이 안 오고 머리를 아프게 합니다. 통밀을 쓰지 않으면 병이 오히려 심해집니다.
【강지원】_ 통곡물을 먹으려면 많이 씹어야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선재광】_ 치아를 부딪치는 고치법(叩齒法)이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50번씩 고치를 하라고 권고하는데, 이가 튼튼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침이 나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임맥과 독맥이 만나 침을 만드는데, 단전호흡을 잘하면 임맥과 독맥이 잘 순행되어 입 안에 침이 고이면서 향기가 나고 단맛이 나면서 심신이 가벼워집니다. 침과 진액을 많이 만들어 정(精)을 충분하게 해야 기력(氣力)이 생기고, 기력이 생겨야 심신의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강지원】_ 침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선재광】_ 건강의 핵심이 침입니다. 침을 삼키면 오장육부를 건강하게 하고 근골이나 피부까지도 좋게 합니다. 기혈의 경락 흐름도 좋아지고 요샛말로 세로토닌, 도파민 등이 나옵니다. 죽는 날까지 침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진액이 부족하면 나무가 마르듯이 인체가 마르게 되고, 침이 안 나오면 백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침이 많이 섞인 가래는 뱉지 말고 삼키라고 했습니다. 인체에서 정(精)을 밖으로 너무 내보내면 병이 오듯이, 타액도 밖으로 많이 내보내면 좋지 않습니다.
【강지원】_ 침은 소화 외에도 해독작용도 하지 않습니까?
【선재광】_ 모든 음식은 치아로 잘게 부수고 침이 나와 균을 죽이고 소화가 잘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적(食積), 담적(痰積), 어혈(瘀血) 등이 생기게 되어 모든 병의 원인이 됩니다. 또 모든 음식은 작은 독이든 큰 독이든 독을 다 가지고 있는데, 음식이 입에 들어오면 맨 먼저 침이 균들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입에서 침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통곡물을 오랫동안 잘 씹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지원 kunkang19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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